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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logy/Character (심리분석)

「손아귀」 소진 ㅣ 감정을 몰랐던 소녀의 비극

by D:L 202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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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손아귀
네이버 웹툰 손아귀

 

네이버 웹툰 「손아귀」가 완결 되어 기념으로  주인공 소진의 심리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소진은 감정이 없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모든 일에 무심하고 표정 또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소진은 회사를 다니며 Vlog 유튜브로 활동 중이었는데  어느 날 의문의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닫혀 있던 기억의 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지워졌던 과거가 드러나는 스토리입니다. 그 과정에서 소진은 여러 인물과 얽히는데 메인은 경찰인 선민과 남자 친구 재은입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소진은 상사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표정 변화가 없는 점이나 유튜브 영상을 찍을 때조차 웃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위화감은 주변 사람들이 느낄 정도라서 상사가 '표정 관리 하나 못 한다'면서 비꼬기까지 합니다. 가끔 웃는 모습이 등장하지만 이마저도 흉내 내는 것에 가까워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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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은 과거에 훨씬 더 무감정했으나 재은을 만난 뒤로 조금씩 표현을 배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독자들은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하는 소진이 살인 사건으로 재차 망가지는 모습을 안타까워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일련의 사건들 없이 재은과 꾸준히 애착을 쌓았을지라도 소진이 평범해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재은이 아무리 안정을 주어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자정 작용으로 일반인에 준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소진이 느끼고 해석하는 감정은 일반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진으로서는 자연스럽게 흉내 내는 것이 고작이어야 아귀가 맞습니다.

 

철저하리만치 자기중심적인 소진은 본인이 관심 있는 것에만 신경을 쏟습니다. 꽃을 좋아했던 소진은 화단 관리 담당이 아님에도 모종을 심고 정성 들여 가꿉니다. 교실에서는 칼로 책상을 긁어내어 꽃 모양을 만들기도 하는데 선천적으로 가진 파괴적인 기질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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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이 어째서 꽃을 좋아하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화단을 엉망으로 만든 개를 삽으로 난도질하여 죽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왜 죽였냐는 선생님의 말에 '화단을 망치지 못하게 하려고'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죽으면 더는 화단을 망칠 수 없다는 것이 소진의 논리였습니다.

 

위 사례를 보면 소진은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도덕심이나 죄책감을 모르고 짙은 폭력성은 사이코패스를 떠올리기 좋으나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소진은 재은 덕에 알게 된 감정을 거부하기보다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는데 사이코패스라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소시오패스도 아닙니다. 소진은 재은과 사귀면서 주변인이 느낄 만큼 감정 반응이 다양해지는데 소시오패스는 타인과 감정적인 공유가 불가능합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보기에도 모호합니다. 범법 행위에 거부감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상습적이지 않고 개인 이익을 위태 타인을 짓밟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지독한 에고이스트이면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합니다. 소진이 반사회성 인격장애였다면 훨씬 무자비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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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이르러 소진은 죽을 위기에 놓인 재은을 구하고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인범을 죽이는데 이드는 다르게 해석합니다. 재은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를 입지 않기 위함이었다는 주장입니다. 초자아와 이드의 상충된 입장은 소진의 현재를 잘 반영했다고 보입니다. 이상과 본능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소진은 무의식과 싸우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지워버렸던 과거를 꺼내 약물 실험으로 주입된 갖은 감정, 즉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것과 다신 한번 모는 것을 잊고 편해지는 것 중 고를 수 있었습니다. 이드는 후자를 종용했으나 재은과 쌓았던 감정들을 잊고 싶지 않았던 소진은 전자를 택합니다. 이마저도 '원한다'는 표현을 쓰며 감정을 담기보다는 욕구에 충실한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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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으나 문제는 이후입니다. 소진은 재은이 살인범과 싸우다 죽었다고 여기며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합니다. 교도소에서 재은과 나누었던 감정들을 곱씹을 예정이었으나 누명이 풀리면서 정신이 무너져 내린 탓에 편해지고자 내린 선택입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낸 뒤 가까스로 돌아온 재은과 재회하는데 그제야 웃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언뜻 감동적인 결말로 보이나 저는 '소중하다고 느꼈던, 함께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 속의 감정들'이 버거워 정신 병원으로 도피한 것치고는 너무 극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두 사람의 연애는 형식적인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을 겪었고, 죽었다 살아난 만큼 극적인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감정 반응이 너무 빠릅니다. 소진은 병원에서 보내는 일 년 동안 과거에서 되찾은 감정들을 흡수하는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들이 말도 거의 없고 웃는 모습 한번 보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무감정한 상태를 유지했던 만큼 재은에게 반응한다면 자연스럽지 못한 웃음이나 웃고자 애쓰는데 눈물이 나는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나 합니다.

 

심리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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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까지 접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소진은 정말로 감정이 없는 아이였나'입니다. 선천적으로 감정이 결여된 채로 태어났던 것인지, 단순히 감정 반응에 둔감하고 정서 발달이 더뎠던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어릴 적 소진은 선민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만지면 안 돼. 더디게 나는 싹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야.

사람 손길이 닿는 순간 꽃은 너무 쉽게 죽어버리고 마니까. 잘 자라기를 바란다면, 그냥 지켜보면 돼."

 

초등학생이 철학적인 의미까지 담았을 리 없지만 위 대사를 기점으로 가설이 생겼습니다. 약물 실험에 이용되면서 느리지만 조금씩 개화하였을 감정을 강제로 주입받은 탓에 기억을 잃고 더욱 무감정해졌다는 가설입니다. 정답은 작가만이 알 테지만 후자라면 소진이 재은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고 감정까지 깨우친다는 설정이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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